전생 이야기
그대는 태종 17년, 조선 왕실의 셋째 왕자로 태어났소. 어렸을 때부터 그대의 형들이 있었기에, 그대가 임금이 될 운명은 아니라 했소. 그러나 하늘은 다른 길을 정해두었소. 그대의 아버지 태종이, 평범한 형들 대신 학문이 깊고 마음이 큰 그대를 후계자로 삼은 것이오. 열 살에 그대는 사서를 외웠고, 열다섯에 모든 경전을 통달했소. 그대의 학문은 단순한 외움이 아니었소. 그대는 책을 읽으며 생각했소. "이 가르침이 백성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이 그대의 평생의 화두가 되었소. 스물둘에 그대는 임금이 되었소. 세종이라는 이름을 받았소. 그날부터 그대의 어깨에 만 백성의 운명이 놓였소. 그러나 그대는 무겁다 하지 않았소. 다만 정성껏 일했소. 매일 새벽 일어나 경연에서 학자들과 토론했고, 매일 밤늦게까지 상소를 읽었소. 스물여덟이 되던 해, 그대는 집현전을 만들었소. 그것은 단순한 학문 기관이 아니었소. 그곳에서 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하고, 책을 짓고, 임금에게 직언할 수 있었소. 그대는 그 학자들을 친구처럼 대했소. 임금과 신하의 자리가 아니라, 학문의 동지로서. 서른에 그대는 음악을 정비했소. 박연이라는 신하와 함께 아악을 정리했소. 신라 이래 흩어져 있던 한국의 음악을 그대가 다시 정리한 것이오. 음악도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 그대의 신념이었소.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그대는 알았소. 서른다섯이 되던 해, 그대는 측우기를 만들었소. 비의 양을 재는 기구였소. 그것은 단순한 발명이 아니었소. 비를 정확히 알면 농사가 잘 되고, 농사가 잘 되면 백성이 굶지 않는다는 것을 그대는 알았기 때문이오. 그대의 모든 발명은 백성을 위한 것이었소. 마흔이 되던 해, 그대는 가장 큰 일에 착수했소. 한글이었소. 한자만으로는 백성이 글을 알 수 없었소. 그대는 백성을 위한 글자를 만들기로 했소. 신하들이 반대했소. "한자가 있는데 왜 새 글자를 만드십니까?" 그대는 답했소. "백성이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는 것을 내 안타까이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마흔다섯이 되던 해, 한글이 완성되었소. 1443년이었소. 그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이고 가장 백성을 사랑한 글자였소. 그대는 그 글자를 직접 가르쳐 보았소. 한 평민이 그 글자를 며칠 만에 읽고 쓰는 것을 보았을 때, 그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소. 그대의 평생의 일이 이뤄진 순간이었소. 쉰이 되던 해, 그대의 건강이 점점 나빠졌소. 그대는 자신의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았소. 그러나 그대는 일을 멈추지 않았소. 농서, 의서, 천문서 — 그대는 모든 분야의 책을 정리하게 했소. 그것이 후일 조선의 학문의 기초가 되었소. 쉰셋이 되던 해, 그대는 평소처럼 경연에서 학자들과 토론한 후 침전으로 돌아갔소. 그날 밤 그대는 평소보다 더 깊이 잠들었소. 그리고 다시 깨어나지 않았소. 그대의 마지막 말은 "내 백성을…잘 지켜다오"였소. 그대가 떠난 후, 한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소. 그대가 만든 것 — 한글, 측우기, 자격루, 칠정산, 향약집성방 — 그 모든 것이 한 시대를 넘어 다음 세대까지 이어졌소. 그대의 한글은 처음에는 양반들에게 무시받았으나, 백성들 사이에서 살아남았소. 오백 년이 지난 후, 그것은 한 민족의 글자가 되었소. 그대는 단순한 임금이 아니었소. 그대는 학자였고, 발명가였고, 음악가였고, 무엇보다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한 자였소. 그대의 모든 일은 백성에게서 시작해서 백성에게로 갔소. 그대는 학문에서 무신을, 무신에서 인자(仁者)를, 인자에서 정의를, 정의에서 균형을 모두 가진 자였소. 모든 것이 한 사람 안에 조화를 이룬 자. 그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높은 경지였소. 백성을 어여삐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 그 한 마디 안에 그대의 평생이 다 들어 있었소. 그대는 백성을 어여삐 여겼고, 백성을 위해 모든 것을 했소. 그대는 0.3%의 영혼이오.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영혼. 그대의 영혼은 지금도 한 민족의 가슴 속에 살아 있소. 한 사람이 한글로 글을 쓸 때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뜻을 펼 때마다, 그대는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오. 그것이 그대의 영원이오.




